(김규항, "좌파란 무엇인가", 한겨레, 2009.6.24)
"예나 지금이나 좌파의 존재적 모순은 대개의 좌파들이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 자체가 아니라는 것, 그 계급의 인민들의 현실 속에서 실제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좌파는 늘 그 모순에 긴장해야 한다.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지 않는 좌파 인텔리의 관념 속에서 그 현실은 잠시 미루어지거나 생략될 수 있다. 싸우다 지치면 잠시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 그 현실은 미루어질 수도 생략될 수도 없다. 그들의 현실엔 휴가가 없다."
<한겨레>에 실리는 김규항의 칼럼을 빼놓지 않고 읽는다. 그의 미덕로으로는 어려운 말 쓰지 않고 차근차근 사람을 설득해 들어가는 글쓰기 실력과 어지간해서는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일관성을 꼽고 싶다. 나는 '그의 생각' 자체에는 별로 중점을 두지 않는다.
그의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감동받았습니다. 저를 돌아보게 되네요". 둘째는 "왠지 불편합니다. 어쩔 수가 없잖아요". 셋째는 "당신이나 잘 하시오". 이 세 입장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오늘 그가 쓴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전문(全文)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대한민국에서 '좌파'라는 단어의 뜻 바뀌었습니다.
좌파 : 상식과 양심을 갖고 사는 사람.
국어 사전이 아직 안 바뀌어서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입니다.
우파란 단어는 '양아치'의 동의어로 바뀌었습니다.
김규항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란 표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헷갈리지 않게..."
이 댓글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바는 김규항과 독자들의 좌우 구분법에 큰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이 '구분'을 문제삼고 있는 댓글들이 상당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제 3의 길은 가능한가: 좌파냐 우파냐』(노르베르토 보비오, 박순열 역, 새물결, 1998)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좌파'와 '우파'는 2세기 이상-프랑스 혁명 이래를 의미함(글쓴이)-정치 사상과 정치 활동의 세계를 분할해 온 여러 이데올로기와 운동들간의 대립을 표현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사용해 온 두 개의 대립적인 용어이다."(p.33)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2세기 이상'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좌우파 구분의 역사성이다. 즉, 좌파와 우파의 의미를 함부로 바꿀 수가 없다는 뜻이다.
좌우파를 구분하는 것이 200년 넘게 계속되어 왔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저자는 책의 상당 부분을 이 기준에 대해 논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다 빼고, 저자가 말하는 '기본 원리'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주장, 즉 좌파의 변별적 특징은 평등주의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역사적 증거 중의 하나, 전통적인 좌파 정당과 운동들의 기본 원리(또는 원리 자체)가 '무시무시한 권리'인 사적 소유권(이것은 지난 세기뿐만 아니라 유사 이래로 사람들간의 평등을 저해하는 중요한 장애물 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pp.129-130)
저자의 주장에 따라 '평등주의'가 좌파의 변별적 특징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김규항이 자신의 칼럼에서 좌파의 출발점을 계급에서 찾는 것은 그르다고 할 수 없다. 그의 글에서, 그는 계급지배를 약화시킴으로써 다수의 사람들이 평등하게 '인간적 사회적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구절은 김규항의 글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불평등이 나타나는 기본 원인은 빈자와 부자의 차별(개인의 소유권은 양도불가능한 권리라는 끈질긴 믿음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때문이라는 확신은 남성과 여성, 손노동과 지적 노동, 또는 이민족들간의 차별 같은 다른 기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p.131)
김규항의 칼럼에 댓글을 쓴 이의 주장-대한민국의 좌우파는 대한민국에서만의 고유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200년 넘게 사용되어 온 용어의 용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을 하고 싶다면, "대한민국은 '정치 사상과 정치 활동의 세계를 분할해 온 여러 이데올로기와 운동들간의 대립'으로부터 자유롭다"라고 먼저 전제를 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의 현재는 세계로부터, 그리고 과거로부터 벗어난 시공간이라고 한 이후에 그런 주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계급에서 좌파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이에게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란 표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상식과 양심을 갖춘 좌파는 좋지만, 대한민국에서 유달리 빨간 색채를 띠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싫다는 것인가?
김규항의 블로그에 오늘(25일) 실린 글 "가장 편안하게"를 읽어보니, '좌파로 사는 게 편안하면 좌파로 살면 되는 것이고 자유주의자로 사는 게 편안하면 자유주의자로 살면 됩니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안쓰럽다 .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해야만 하는 그의 처지가 고달파 보인다.
- 2009/06/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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